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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2025 별빛물빛 콘서트 in 양평 1월 공연, 가족오페라 <마술피리> "예술이 마술이 되는 시간 속으로"

2025 별빛물빛 콘서트 in 양평, 가족오페라 <마술피리>

예술이 마술이 되는 시간 속으로

 

이단비/ 공연 대본작가·무용전문작가


도깨비방망이와 절대반지, 백설공주 속 마법의 거울. 전래동화와 소설, 만화와 신화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마술적 도구들은 이야기를 이끄는 중심축이 되거나 사건을 전환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한다. 수리수리마수리! 열려라 참깨! 금 나와라 뚝딱! 등장인물이 쏟아내는 주문을 함께 읊조리다가 우리는 어느 새 현실에서는 마주칠 수 없는 신비한 힘에 홀려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게 단순한 재미로 그치지 않는 건, 이 이야기들이 우리의 욕심과 욕망을 들여다보게 하고, 더 나아가 인간다운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오페라에서는 엠마누엘 쉬카네더(E. Schikaneder, 1751~1812)가 대본을 쓰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A.Mozart, 1756~1791)가 작곡을 한 <마술피리(1791)>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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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빛물빛 콘서트 1월 가족오페라 <마술피리>  Ⓒ 양평문화재단


한 해의 문을 여는 1월, 경기도 양평문화재단이 기획한 ‘2025 별빛물빛 콘서트 in 양평’에서는 70분 분량의 가족오페라로 변모한 <마술피리>를 첫 작품으로 선보였다. 발레, 클래식 음악, 현대무용, 동요 아카펠라, 전통공연 등 상반기에 선보이는 총 6개의 작품 중 <마술피리>로 별빛 물빛 콘서트의 첫 문을 연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이 오페라의 내용과 배경을 전혀 모르더라도 ‘마술피리’라는 그 제목 자체로 이미 유혹적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에게는 오페라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어린이들에게는 ‘마술피리’라는 오브제가 상상력을 자극하며 이야기 속으로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오페라는 음악, 미술, 무용, 건축 등 모든 예술적 요소들이 결합한 종합예술로서 극강의 미를 보여주지만, 그만큼 여러 예술장르 중에서 가장 접근도가 쉽지 않은 장르이기도 하다. 관객 입장에서는 클래식 음악을 기반으로 한 음악에 이탈리아어나 독일어로 되어 있는 가사 때문에 부담을 느낄 수 있고, 창작자에게는 노래 실력 뿐 아니라 연기력을 갖춘 다양한 음역대의 성악가들을 캐스팅해야 하고, 오케스트라를 꾸려야 하며, 무대세트와 의상, 다양한 연출에 대한 고민이 뒤따르는 장르이다. 그에 따른 고가의 입장료도 오페라 공연장에 진입하기에 큰 걸림돌이 된다. 이런 점들을 넘어서면서 오페라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든 시도들은 계속 나오고 있다. 무대 장치나 의상을 과감히 없애고 연주회 형식으로 진행하는 콘서트 오페라, 그리고 연출적 장치들을 최소화하고 핵심 곡들만 뽑아서 미니멀한 무대로 재탄생시킨 가족오페라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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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물빛 콘서트 1월 가족오페라 <마술피리> Ⓒ 양평문화재단


이번 ‘2025 별빛물빛 콘서트 in 양평’에서 선보인 <마술피리>는 2막으로 구성된, 2시간이 훌쩍 넘는 이 작품을 70분 분량으로 압축한 가족오페라이다. 이 과정에서 생략한 등장인물과 줄거리에 대해서는 중간 중간 해설자를 등장시켜 간극을 메웠고, 때로는 극 안에 적극 개입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밤의 여왕의 세 시녀들과 타미노와 파미나, 파파게노를 안내하는 신화적 존재인 세 소년은 등장하지 않고, 타미노와 파파게노에게 마술피리와 은방울을 건네는 건 해설자의 몫이었다. 그리고 <마술피리> 속 주요 곡들을 주축으로 오케스트라 대신 피아노 한 대가 음악적 서사를 이끌었다. <마술피리>는 이탈리아어가 아니라 독일어로 대사를 주고 받고 서정적인 노래를 곁들인 ‘징슈필(Singspiel)’이다. 이번 공연도 독일어 가사를 한국어 자막으로 안내하고, 새잡이 파파게노의 익살스러운 면모와 타미노 왕자와 파미나 공주의 러브라인을 살리면서 징슈필의 친화적인 분위기를 살리고자 했다. 아쉽게도 극의 흐름과 내용의 이음새가 매끄럽지 못해서 관객들이 줄거리를 따라가고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혼동되는 면은 있었다. 예를 들어 파미나 공주를 맡은 성악가가 후반부에는 1인 2역으로 파파게나로 등장하고 그 흐름 그대로 커튼콜까지 이어지면서 타미노 왕자와 파미나 공주의 러브 스토리 라인은 흐트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애초에 오페라 <마술피리>는 그다지 간단한 작품이 아니다. 원작도 각 장면의 연결에 대한 설득력이나 개연성이 떨어지는 면은 있다. 큰 줄기는 밤의 여왕이 왕자 타미노에서 납치당한 자신의 딸 파미나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파미나의 초상화를 보고 반한 타미노가 새잡이 파파게노와 함께 그녀를 구하러 가는 이야기이다. 문제는 알고 보니 밤의 여왕이 악의 세력이고 파미나를 데려간 자가 그녀를 보호하는 성직자였다는 점이다. <마술피리>는 결국 이성과 철학과 지혜, 빛을 상징하는 자라스트로와 어둠을 상징하는 밤의 여왕의 대립을 보여주고 있다. 파미노와 파파게노가 자라스트로의 휘하에서 여러 시험과 수행을 거치는 장면은 빛의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런 면 때문에 이 작품은 선악의 이분법과 빛의 승리하는 단순한 구조 안에서도 인간에게 필요한 덕목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이분법적 구조는 어린이 관객에게는 친절하고 친숙한 구조이기 때문에 <마술피리>가 가족오페라로 선보이는 경우도 많다.

 ac323c8c37abb.jpg별빛물빛 콘서트 1월 가족오페라 <마술피리> Ⓒ 양평문화재단


이번 공연 당일, 양평문화재단 2층에 마련된 110석 규모의 소극장에 부모의 손을 잡고 온 어린이 관객들이 꽤 눈에 띄었다. 어린이들의 눈높이도 고려한 가족오페라 안에서 <마술피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꿰뚫고 깊이 성찰해보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연이 의미가 있었던 건 작품 속 주요 곡들을 라이브로 직접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마술피리>에서 가장 유명한 캐릭터는 누가 뭐래도 밤의 여왕이다. 정작 전체 오페라에서는 초반과 후반에 잠깐 등장하지만, 밤의 여왕이 부르는 아리아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 속에 끓어오르고‘는 대중들에게 가장 유명한 곡이기도 하다. ‘아아아아’로 대표되는 4옥타브의 부분은 특히나 유명하다. 4옥타브의 고음을 낼 수 있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coloratura soprano)의 노래를 소극장 무대 가까이에서 보고 듣는 건 특별한 경험이다. 난이도 높은 성악적 기교와 자라스트로를 향한 분노,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심이 점철된 드라마틱한 연기는 <마술피리> 전체에서 가히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파미나 공주는 서정적인 음색을 보여주는 성악가를 리릭 소프라노(lyric soprano)로서 밤의 여왕과 대비되는 분위기를 살려냄으로써 관객들은 이번 공연에서 소프라노의 두 가지 음색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마술피리>는 위엄 있는 종교음악, 웃음을 자아내는 민속적 노래, 그리고 징슈필이 갖는 서정적이면서 수수한 매력이 버무려진 작품이며,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이기도 하다. 그 음악과 노래를 소극장 안에서 가깝게 보고 들어을 수 있는 의미있는 경험이다. 이번 공연에서도 각 음역대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주요 곡들이 극장 안을 메웠다. 테너 타미노 왕자가 파미나 공주의 초상화를 보고 반하는 장면에서 부르는 ‘이 초상화의 여인은 너무나 아름다워’, 웃음과 익살스러운 연기로 어린이들에게 인기 많은 캐릭터인 바리톤 파파게노의 아리아 ‘나는 새잡이’, 타미노와 파미나와 베이스 자라스트로의 3중창 ‘사랑하는 이여, 당신을 다시 못 보는 건가요?’, 그리고 파파게노와 파파게나의 귀여운 이중창 ‘파, 파, 파’ 등이 그것이다. 관객들은 뮤지컬과는 또다른 매력을 느끼는 시간이 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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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물빛 콘서트 1월 가족오페라 <마술피리>  Ⓒ 양평문화재단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타미노 왕자와 파파게노가 받은 마술피리와 은종은 다른 동화나 신화 속에 등장하는 마술적 도구들보다 그 존재감이 미비하다고 할 수 있다. ‘마술피리’를 제목을 내세우는 게 무색할 정도로 극을 이끄는 중심축을 이끄는 역할을 부여되어 있진 않다. 그런데 그 역할 안에서 다른 지점을 들여다보게 된다. 극 안에서 그 마술적 도구들을 이용해 악인의 무리를 쫓아내는 방법은 폭력이 아니라, 그들을 춤과 음악 안에 취하게 하고 마음을 순화시켜 애초에 폭력을 무력화시키는 방식이었다. 그것은 검과 칼은 해낼 수 없는 일이며, 바람이 해님을 이길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술은 일종의 마술피리이다. 공연의 완성도나 진행에 있어서 다소 아쉬움이 있더라도 그 공연이 관객들, 특히 어린이들에게 어떤 작용을 하게 될 지 알 수 없다. 그 마술은 시간을 건너 우리가 예상치 못한 시간에 제 힘을 드러낸다. 지역의 재단들이 끊임없이 공연을 올리면서 지역의 관객들이 예술적 체험을 마주하게 하려고 시도하는 건 그래서 가치 있다. 그것은 작은 극장 안에서 일어나는 시간의 연금술이다. ‘별빛 물빛 콘서트 in 양평’에서 선보일 공연들이 그런 역할을 하게 될 거라고 기대하고 기다린다. 예술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가장 신비한 마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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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비

시사·교양·문화예술 프로그램 및 예술 다큐멘터리의 방송작가로 활동했다.발레에 빠져 다양한 춤과 발레를 배워 오면서 예술 토크와 강연 진행,발레와 현대무용 작품 창작 작업을 통해 무용전문작가로 활동하고 있다.다양한 매체에 춤과 예술에 관한 글을 기고하고,예술책을 집필하면서 무대와 객석을 잇는다. 최근 출간한  <발레,무도에의 권유>가 교보문고 뉴앤핫,세종도서로 선정됐다.